인천대교 걸어서 건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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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 걸어서 건너기

김영환

2009년 10월 20일 (화) 08:56:10

10월17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경인선을 타고 부평 역에서 환승하여 인천지하철 동막 역에 내리니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수백여 미터의 장사진을 치며 행사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도 전에 벌써 지쳤는지 119구급대가 나타나 쓰러진 여인 한 명을 급히 싣고 갔습니다.

‘이러다간 늦겠다…’ 언제 탈지 모르는 셔틀버스를 단념하고 물어물어 인천 시내버스를 타고 송도 호텔 앞에서 내렸습니다. 9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인천지하철이 뚫렸어도 송도는 서울에서 보면 역시 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병대 전우회가 주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한테서 ‘어디 있느냐’는 전화가 여러 번 왔습니다. 그러나 수만 명이 자리한 곳에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패여 있었습니다. 집결지인 ‘파라마운트 영화 파크’ 는 2011년 완공 목표라는데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외자유치가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상입니다.

신종 플루 예방에 만전을 기한다는 주최측의 선전과는 달리 열 감지기도 안 보이는 형식적인 체온검사를 하고 출발 행사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체온검사 하세요’라는 행사요원의 부탁이 애처로워 열을 쟀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하기야 건강에 자신 있으니 십 수 킬로미터 걷기에 도전하는 것이겠지만…
잘못 온 티셔츠를 바꾸기 위해 본부석으로 갔더니 다시 입구 안내소로 가라고 해서 약 1킬로미터를 헤맸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다리가 혹사당했습니다. 이동식 화장실에 있는데 갑자기 흔들렸습니다. 폭죽이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오니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평일에 한적한 산하를 다니는 필자에게 3차선을 가득 메운 인파는 어지럼증을 일으켰습니다. ‘좀 끊어서 시차를 두고 출발시켰다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바다 구경은커녕 키 큰 사람들에게 치여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뒷통수만 보며 걷다가 도저히 안되겠기에 중앙분리대인 시멘트 방호벽을 넘어서 반대 차선으로 건너 걸어갔습니다.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화장실은 정말로 평균 4킬로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수십 개의 이동식 화장실 앞에 수백여명이 마치 걷기 행사를 차단하는 것처럼 3차선 길을 가로막고 줄을 만들어 처량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을까요? 무슨 생리학적 근거로 4킬로미터 거리로 화장실을 설치했는지 궁금했습니다. ‘2킬로미터마다 두었다면 이렇게 긴 줄은 안 생길 텐데…’ 요즘 짓는 79평방미터(구24평) 소형 아파트도 화장실은 2개죠.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방해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자 인격 모독입니다.

남자라고 표시한 곳에도 여자들이 체면불구하고 줄을 섰습니다. 줄이 빨리 줄어들기 때문인 듯 했습니다. 시간을 줄이려고 앞의 젊은 남자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년남자와 나는 같이 들어가 용변을 보았습니다. 이 젊은 사람은 옛날 고속도로 휴게실, 칸막이도 없어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물이 흘러내리던 스테인리스 철판에 소변을 보던 기억이 없나 봅니다. 구급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역주행해 갔습니다. 이래서야 구급이 되겠나 딱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늘엔 소방 헬기들이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12시에 높이 238.5미터의 인천대교 주탑 앞에 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반환점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필자도 미리 유턴하여 돌아오려고 했지만 오고 가는 편도 3차선 사이에는 깊은 바닷물이 보이는 넓은 틈새가 있어 건널 수 없었습니다.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왔지만 중간에 툭 끊기기 일쑤라서 제대로 통화할 수 없었습니다. 대형 행사장에 으레 보이기 마련인 이동식 중계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인천대교는 차량을 타고 지날 때에도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 지역이 될 것이라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걷기대회에는 5만 명이 참가한다고 계획했는데 19일 주최측의 신문을 보니 7만 명이 참가했다는군요. 무슨 사단 무슨 연대 등 행사 유니폼도 입지 않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는지 인천대교 곳곳에 ‘육’자를 표시한 군 차량들도 보였습니다.

주탑의 끝부분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일부는 식사를 하느라 북새통이었습니다. 또 일부는 영종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필자도 그 대열에 끼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다소 줄어드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내리막길에 서니 멀리 4킬로미터쯤 앞에 선두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왼쪽으로 팔미도, 더 멀리 덕적 군도, 오른쪽으로 인천 항만과 월미도, 그 옆으로 계양산, 앞쪽으로는 영종도 백운산, 그 너머로 강화도 마니산까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수십만 톤이 될 법한 컨테이너 선박이 장난감처럼 항구를 나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1시가 넘자 배가 고파왔습니다. 다리 노견에 앉아 김밥을 먹다 보니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 일어났습니다. 자리를 옮겨 상판과 상판이 연결된 교각 위에 자리했더니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밥 두 줄 중 한 줄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래바람도 눈 속으로 파고들어왔습니다.

더러 씩씩하게 걸어오는 금발의 외국인들도 보였습니다. XX산악회, 재인 XX고 동기회 등 각종 친목 단체들의 배낭에 꽂은 깃발들이 강풍에 나부꼈습니다. 자전거 타기는 내일이라는데 웬 자전거를 탄 성질 급한 사람들이 여러 명 지나갔습니다. 기념품으로 준 중국산 싸구려 라디오는 들리다 말다 해서 가지고 간 엠피3로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물을 준다니 생수를 갖고 갈까말까 하다가 갖고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소변이 보고 싶었으나 화장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목말라도 참으면서 불쾌한 기분을 갖고 걸어갔습니다. 날씨가 쌀쌀해 땀이 안 나오니 뇨의(尿意)가 더 잦은 것입니다. 영종 3킬로미터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서 한참 뒤에 화장실이 보였습니다. 강풍 탓인지 길가에 가로 누운 화장실들이 여러 개 보였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소변기와 변기통을 연결한 호스가 잘라져 오줌이 그대로 고속도로 위로 흘러나가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국제도시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지 않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 2시44분 마침내 종점인 영종도 톨게이트가 보였습니다. ‘인천대교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새겨진 기념비도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걷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톨게이트를 지나서 긴 줄이 보이길래 무조건 섰지만 도대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가보니 모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작 버스 2대가 서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포기하고 공항 쪽으로 무작정 걸어갔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이니 보행자를 위한 안내판도 없었습니다. 영종도 뱃터나 신공항역으로 실어다 준다던 주최측의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거의 20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니 장단지가 너무 아팠습니다. 도저히 아스팔트를 걸어갈 기운이 없었습니다. 허허벌판에서 시내버스가 다닐만한 길을 둘러보았습니다.

멀리 오른쪽을 바라보니 약 1킬로미터 지점이 몇 번 등산했던 백운산 서쪽 자락이었습니다. 파란색 인천 시내버스가 지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톨게이트에서 약 50분을 더 걸어 3시30분 자동차도로의 펜스가 낮아지자 이를 넘어 급경사를 내려가 버스 길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트럭을 얻어 타고 큰길까지 갔습니다. 큰길에서 10여분을 기다리니 영종 구읍 뱃터로 가는 시내버스가 왔습니다. 3,000원의 ‘거액’을 주고 월미도로 가는 페리 선에 올랐습니다.

페리 선에서는 고생고생하며 멀리 유턴하여 걸어온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건설기간 52개월, 공사비 2조4,566억원이라는 해상의 대역사는 한국 건설기술의 신기원입니다. 길이 21.4킬로미터로 세계 7번째, 경기남부 지역에서의 공항도착시간 40분 단축. 자랑하고 싶은 게 많은 인천대교이지만 이 대교의 통행량이 늘어날수록 기존 영종대교와 신공항철도의 적자 폭도 확대될 것이 자명합니다. 지금 영종도와 청라지구를 잇는 제3의 다리도 계획하고 있죠. 논란이 많았던 통행료는 승용차 5,500원으로 결정되었는데, 인천대교㈜의 지분 23%는 영국의 에이멕 사가 갖고 있습니다.

저녁 7시, 꼭 12시간 만에 집에 돌아와 만보계를 보니 믿거나 말거나 26,525보로 나타났습니다. 9시 뉴스를 켜니 주요 꼭지로 인천대교 ‘준비 없는 걷기대회, 참가자 분통’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걷기 위한 다리가 아니니 별 수가 있겠느냐 만은 기본적인 준비 소홀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너무 많은 인원을 참가시켜 통제불능상태에 빠진 것이 그것이죠. 인천대교를 횡단하는 핑크 그룹도, 주탑에서 되돌아가는 블루 그룹도 뒤엉켰습니다. 인명사고가 안 난 것은 오로지 높아진 시민들의 질서의식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날 밤 주최측이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19일 보았습니다. ‘급작스런 일기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대회운영이 매끄럽지 못한 점 깊이 사과 드립니다.’ 다시 19일 낮 휴대폰이 울리기에 열어보니 ‘참가자 중 기념메달을 못 받으신 분 25일까지 홈페이지로 신청해주세요’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대회를 축소했다면 어떻게 알려야 했을까요? 그 많은 인천대교 위의 전광판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 이 전광판들은 ‘통행금지’ ‘횡단금지’ 등 중대 돌발 상황을 고지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요?

‘오직 한번의 기회’라는 인천대교 도보 횡단 완주. 웅대한 해상 건조물을 걸으면서 느껴보는 꿈은 모지락스럽게 이뤄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왠지 씁쓸합니다.

송수경 (115.XXX.XXX.150)

간접적으로나마 글을 접해봤는데 저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네요. 정말 고생 많으셨을것 같습니다. 역시 "최초"는 무리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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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3 16: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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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115.XXX.XXX.150)

이날 거의 20키로미터를 걸었죠. 거의 콘크리트 길이었죠. 당일엔 몰랐는데 오늘 조금 걸어보니 발 뒷굼치와 무릎이 좀 아픕니다. 사람이 다니는 산 길을 걷는 것과 자동차가 다니도로 만든 고속도로 위를 걷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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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22: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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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jk (121.XXX.XXX.250)

나도 가고 싶었는데, 사람으로 가득한 인천대교 사진을 보고 못간 아쉬움이 더욱 컸었는데
그 속에 그런 무지와 무관심도 가득했었구료. 뛰어내린 사람 없이 다들 다리에서 내려온 것이 다행이다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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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11: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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