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世子冊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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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世子冊封’

임종건

2009년 09월 18일 (금) 12:19:06

한동안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북한권력의 후계문제와 관련, 엇갈린 관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세가 호전됨에 따라 3남 정운(26)에게로의 후계논의가 중단됐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물밑에서 후계공식화 조치들이 치밀하게 추진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전자가 관념적인데 반해 후자는 구체성을 띠고 있습니다. 북한의 유선라디오방송인 ‘제3방송’이 김정운을 실명 거론하고 있는가하면, 사적지에 배치된 관광안내원들이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김정운 청년 대장이 다녀간 곳”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며, ‘김정운 대장’을 칭송하는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전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확인된 이상 후계논의가 중단됐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체제 유지 차원에서의 대비는 더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 합니다.

명색이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왕조시대의 ‘왕세자책봉’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백성들을 굶기면서 핵실험하고 미사일 쏘아 올려 가뜩이나 세계의 눈총을 받고 있는 터에 2대 세습으로 모자라 3대 세습이라니 같은 민족으로서 세계를 대하기가 창피스럽습니다.

하기야 잘 가는 나라에서도 대를 이어 집권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가까이로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부자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더 흔해 수많은 중참의원은 물론 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비롯, 직전의 아소 다로 총리 등 수많은 총리들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일본에서 그런 정치인을 ‘곰탕족’이라고 한다는데, 조상의 뼈를 우려먹는 것에 빗댄 별칭이라고 합니다.

그런 풍조는 아시아에서 유달리 많아 인도(네루-인디라 간디-라지브 간디 총리) 파키스탄(줄피카르 부토-베나지르 부토 총리) 인도네시아(수카르노-메가와티 수카르노 대통령)에서 있었고, 필리핀(마카파칼-아로요 대통령)에선 현재진행형입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선 모두 자유선거라는 절차를 거쳐 대를 이었습니다. 북한의 세습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김일성 사후에 최고권력의 자리인 국방위원장으로 등극한 김정일처럼 자유민주선거를 통한 후계는 아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북한의 권력세습을 마냥 조롱만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핏속에는 권력세습의 DNA는 없는 것인가요? 4.19혁명을 불러온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는 이 대통령이 이기붕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기붕은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아들로 입적시켰습니다. 혈연적인 상속관계보다 더 교활한 세습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維新)도 북한의 체제를 닮아보려는 시도가 아니었던가요.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으로 국민들은 남북간 화해를 기대했으나, 박 정권은 북한과 맞서려면 우선 체제가 같아져야 한다는 듯 영구집권을 꾀했던 게 그해 10월의 유신이고, 그것은 1979년 10.26으로 좌절됐습니다.

해방 전 35년은 일제 식민지시대였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가 1910년의 일이니 왕정이 끝난 지가 내년으로 100년밖에 안 되는 나라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왕조는 조선 518년, 고려 475년, 신라 281년(삼국시대까지를 포함하면 992년)으로 2000년 가까이를 3개 왕조가 지배했습니다. 수많은 왕조가 명멸했던 중국의 경우 송나라가 319년으로 가장 길었고, 대부분 200년 미만으로 왕조의 수명이 훨씬 짧았습니다. 일본이 천황의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주장하지만 왕권의 행사 면에서 본다면 우리보다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만큼 우리는 역사적으로 세습의 전통이 강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기업 쪽에서 보면 혈통세습에 대한 집착은 더욱 확연해집니다. 대기업의 거의 모두라고 할 만큼 기업들은 경영권의 혈통세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법부당한 세습으로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부자간 형제간 골육상쟁이 비일비재합니다.

세습전통도 강하지만 정치권력의 세습시도에 대한 저항도 치열해 시민혁명 선거혁명이 많았던 게 우리나라죠. 지구상의 대부분의 왕조는 공산주의 혁명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혁명을 거치며 타파됐거나 형해(形骸)만 남게 됐습니다. 왕조타파의 주된 이데올로기였던 공산혁명을 표방하고 있는 북한에서 나타난 3대에 걸친 왕조형 권력세습은 그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 세습이 아닌 방법으로 권력을 이양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선거를 통한 혁명을 기대하기에는 북한의 상황은 너무 열악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한이 겪은 비선거적 혁명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방 후 남한에는 자유선거, 혁명과 반혁명, 유신, 탄핵 등을 거치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현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0명이 넘는 대통령과 대통령권한대행, 1명의 내각제 국무총리 등이 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정당에 의한 정권재창출은 있었지만 세습은 없었습니다. 때로는 국민들에게 길고도 큰 고통과 함께 잠깐의 희열을 안겨주기도 했고,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도 받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어느 정치세력도 권력의 세습, 또는 선거를 통하지 않은 장기집권 시도는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민주주의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숙하게 된 것이지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말도 이를 일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에 이처럼 격변이 이어져 온 사이 북한에는 김일성일족이 권좌에 머물러 왔고, 이제 20대의 3세에게 대물림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이 60년을 넘은 권력세습이 북한체제 정체의 주범이라고 봅니다. 이것을 깨지 못하는 한 북한은 정체를 벗지 못 한다고 봐야죠.

핵무기의 폐기를 위해서도 북한의 권력세습은 저지돼야 합니다. 핵무기는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김일성의 최대 유산이지요. 그 유산이 아들 손자에 의해서 버려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요. 무엇보다 ‘불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말로는 버릴 듯하면서 못 버리는 까닭도 거기 있을 것입니다. 김씨 일족이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권력이 넘어가는 순간 핵무기는 플러스 유산에서 마이너스 유산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북한에 ‘역성(易姓)혁명’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경제 임종건 부회장 새 필진으로 참여

서울경제신문 임종건(林鍾乾) 부회장이 자유칼럼그룹의 새로운 칼럼니스트로 참여합니다. 임 부회장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 국제부장 전국부장과 서울경제신문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실장 사장 등 요직을 역임했습니다. 2006년 중앙언론문화상 신문·잡지부문을 수상한 그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감사, 한국신문협회 이사로도 활동했습니다. 남북관계, 투명경영이 주요 관심사인 임 부회장은 앞으로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드라이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많은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자유칼럼그룹>

다비 (174.XXX.XXX.97)

북한과 동일민족임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해외에 살고 있는 교포들이면
누구나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겨우 20대의 청소년에게 북한의 통치권을 세습시키려하는 그 수준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무슨 통일이 평화롭게 오겠습니까?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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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0 11: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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