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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香宴
 작성자 : 명선행자  2010-06-08 05:30:44   조회: 2326   
오월의 향연香宴
-사랑하는 세 어미들에게


얘들아! 우리 집에 올해에도 행운목幸運木이 꽃을 피웠다.
어제 저녁 엄마랑 일산 아람누리 소극장에서 "오셀로"를 보고 밤늦게 돌아와 집에 들어서자 온 집안 가득 행운목 꽃향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꽃대를 내어 민지 한 주일을 기다렸더니 이제야 우리 집에 낮에는 입을 닫고 있다가 밤이 되어야 향기를 쏟아내는 암향야래喑香夜來의 ‘향연香宴’이 다시 벌어졌다.
영랑永郞에게 오월 ‘모란’이 있고 육사陸史에게 칠월 ‘청포도’가 있었다면 나에겐 ‘행운목’이 있어 이 오월이 행복하다.
지난 해 입동 무렵 겨울나기 준비로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기다 잘못해 두 줄기 중 한쪽 상순이 꺾이어 내 팔이 잘려나간 듯 마음이 아팠고 올해에도 꽃을 보게 되려나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더니 꺾인 상순엔 새순이 돋고 남은 한 가지에서 어김없이 꽃을 피워 이렇게 화신을 전할 수 있게 해준 행운목이 고맙기 그지없구나.
한 뼘 나무 토막을 가져다 뿌리 내려 싹을 틔우고 기르기 12년 만에 꽃을 피워 ‘오월의 향연香宴'을 누리기를 20년이 넘어가니 이 나무 한그루와 주고받은 30년이 넘는 인목간人木間의 교감의 역사가 이 어찌 선인선과善因善果 인연의 열음(實)이 아니며 염화미소拈華微笑인들 굳이 연꽃을 들어야하랴.

어느 해 그 고혹적蠱惑的 향기에 취한 저녁 한때의 감회를 적어두었던 묵은 시 한편을 아래에 붙여 보낸다.

일모日暮

연하煙霞 자욱한 서천에 해 떨어지자
박모薄暮의 베란다 옹색한 화단에
행운목 향기 자운紫雲처럼 서리어
홀연 이 예토穢土 누항陋巷의 일우一隅에
서기만당瑞氣滿堂한 정토淨土가 열리고

양주兩主 마주 두런두런 저녁 밥상엔
막내며느리 일경日京에서 보내온
‘봉황취심鳳凰醉心’ 반주 곁들여
딸네 텃밭에서 뜯어 보낸 상추에
제주산 갈치젓 얹어 쌈 싸고
큰 애 어버이 날 사온 고기로
얼큰한 육개장 목을 지지노라.

알맞게 취한 소찬 상 물리자
따듯한 등갓 아래
또 하루 삶의 등짐을 풀며
서가 뒤져 뽑아드는 청마시집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이런 때
시는 글이 아니라 말씀이 되고
말씀을 넘어 음악이 되고
음악을 지나 떨림으로
가슴 속 현을 울리고 가는
서늘한 바람이 된다.

불쑥 들이닥친 반가운 길손처럼
일상의 적요寂寥를 흔들어 깨워
넌지시 지족知足을 일러 놓고
총총히 자취 걷어간 황홀한 일모. ( 2006. 5. )

이 꽃이 필 때마다 이름 값 그대로 우리 집과 너희들 모두에게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었었다. 올해에도 좋은 일의 전조前兆를 향기로 싣고 배달하러 온 이 꽃을 반기며 너희들에게 많은 행운이 올 것을 믿는다.
중학교에서 한참 공부의 터를 닦고 있는 씩씩한 두 오라비 녀석들과 그 뒤를 따라 초등학교 재미에 빠진 예쁜 두 공주들, 그리고 땅을 비집고 세상을 향해 눈을 틔우며 뻗어 오르는 새싹같이 고물고물 자라는 엽이, 헌이 형제가 모두모두 건강하게 영육靈肉이 쑥쑥 자라 오르라고 빈다.
저마다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과 육아와 살림살이 주부의 벅찬 두 짐을 지고 가는 너희들 세 어미들이 또 한해 집집마다 새끼들을 잘 건사해 기르고 열심히 살면서 매사에 뜻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는 간곡한 마음을 행운목 향기에 의탁하여 실어 보내며 애비 쓴다.
( 2009. 5. )
2010-06-08 05:30:44
218.xxx.xxx.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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