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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告天
 작성자 : 명선행자  2010-02-12 19:19:38   조회: 1627   
告 天

薄土에 떨어진
한 점 풀씨 같은 목숨

먹구름 천둥 장대비도
반짝 볕드는 양지도 다 지났거니

하 그리 애닲던 五蘊의 누더기
모두 벗어 내려놓고

여태 쓰고 살아온 나(我)라는 허울
구렁이 허물처럼 벗어 던지면

차라리 畜生의 몸을 받아
輪廻의 쳇바퀴를 돌지언정

此生에 못 다 씻은 業障일랑
되 지고 가야하리

오고 간 痕迹이야
無無亦無

절로 起滅하는 浮雲 한 조각
이제사 한없이 누릴 無我한 自在...

(己丑 臘月 Kauai, Hawaii)


둔사遁辭;

무릇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에 유폐幽閉된 유한한 잠재暫在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 하지 않던가.
혹은 영생을 말하고 전생과 후생을 논한들 죽음에 당當해서 생명의 이 유일회성唯一回性이라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실존적 상황 앞에 서게 되면 우리 인간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아 자기와 정직하게 맞서게 된다.
선인先人들은 어떻게 한 생을 마감하는 절박한 종지부終止符를 찍고 갔을까?
스님들의 열반송涅槃頌이나 속인들의 유언으로, 혹은 글속에 함축된 생사관으로, 더러는 죽음 뒤에 세운 비명碑銘으로 남겨진 다양한 자취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 xx-

괜히 왔다 간다. -걸레 스님 중광重光

如是來 (여시래) 이렇게 왔다가
如是去 (여시거) 이렇게 가는가.
來去一如 (내거일여) 오고 감이 한결 같거늘
淸風萬里 (청풍만리) 청풍은 만리로다.
-비구니 스님 혜춘慧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 <귀천> 중에서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박수근 화백

必死卽生 必生卽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충무공 이순신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인가보다!
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구나!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이 샐지도 몰라.
-일본 선승禪僧 모리야 센얀

내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

살고, 쓰고, 사랑했다. -스탕달

드디어 자유로구나! 드디어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Free at last! Free from all at last!) -서양 묘비명(무명)

이제 마지막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닻을 내리고 쉬려 합니다.
이제 저의 모든 기도와 간구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소원의 항구에 이렇게 닻을 내리게 되었으니까요.

주님께서 깨워주실 때까지 편안히 쉬겠습니다.
마음을 다 풀어 놓고 깊은 잠을 자겠습니다.
이 곳 인도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교회 산골묘散骨墓 비문 중에서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 같이 태양 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 시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영혼불멸을 믿지 못한다. 진실인즉 인간은 영혼불멸이 아니므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착각하고 자위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유치환 청마시집 서문 <허무의 의지 앞에서> 중에서
- xx-

무변광대無邊廣大하여 묘망渺茫한 우주, 그 중중무진重重無盡한 화엄세계華嚴世界의 거대한 질서 속에 인연 따라 생멸하는 한 점 인간의 일생이란 무한질주無限疾走하는 시간의 화살을 잠시 탔다 내리는 잠간의 동승同乘에 지나지 않고, 一切有爲法 如夢如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 했거늘 어찌 생사에 연연하여 오고감에 집착할 일이겠는가.
고희의 고개를 넘고 해가 거듭 바뀌어가니 이제 언제라도 사신死神이 앞을 가로막는 날 확연廓然한 생사관으로 담담히 손님처럼 그를 맞이할 마음공부를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미 습작으로 써두었던 졸작 시 <고별告別>의 가지를 치고 잎을 털어 다듬어서 <고천告天>이라 제題하여 묘비명을 삼아 적어본다.
그러나, 무시無始 무종無終 무량無量한 시간의 횡포를 면할 길 없는 세월이 아득히 흘러 비명인들 풍마우세風磨雨洗하여 흙 담처럼 주저앉고 다비茶毘하여 흩어진 육신의 흔적은 사대四大로 돌아가 유‧무의 분별없는 적정寂靜한 경계境界에 이르면 한자락 소조蕭條한 바람이나 오락가락 불고 지날까.
이렇듯 잠시 잠간의 한갓 허황虛荒한 문자의 호사豪奢에 불외不外한 것임을 알면서 짐짓 자표비명自表碑銘을 흉내내어보는 것은 나로 하여 차생此生에 얽힌 뭇 인연들에 대한 고별의 손짓일 뿐 차라리 내 흔적을 깨끗이 지워두고 감이 오히려 훨씬 청정하지 않으랴싶다.
그리하여 이것은 돌에 새기기보다 밀려오는 파도가 쓸어갈 바닷가 모래밭에 써보는 내 인생의 낙서落書같은 것이다.
2010-02-12 19:19:38
125.xxx.xxx.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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